야생과 사육 사이

 활동이야기/야생동물       2006. 12. 27. 17:03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NOT FOR SALE (나는 판매용이 아닙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노랑 바탕색에 검정색 바코드를 찍은 반달가슴곰을 만난 적이 있는가.  
얼마 전에 환경부가 지리산에서 생태복원 중에 있는 한 마리 반달가슴곰이 포획용 올무에 걸려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세상이 떠들썩했다.

[imgleft|061227_101.jpg|220|▲ NOT FOR SALE 광고포스터|20|0]176억원의 예산을 투자하여 한국정부가 생태복원하려는 곰은 국제멸종위기야생동물이다. (환경부, 2006-2015 멸종위기야생동식물 증식복원 종합계획, 2006)

본래 태어난 고향을 떠나와 먼 한국의 지리산에서 생태복원을 위한 실험방사에 동원된 야생 곰들의 운명도 기구하다고 하겠지만, 이 보다 더 딱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육곰이 한국에 1천 400여 마리나 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 여러분이 거리를 스쳐가며 만났던 버스정류장의 광고는 이들 사육곰의 슬픈 이야기다.  

1980년대 초 농림부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서 곰수입을 권장하여 재수출용도로 사육하게 한 이래, 곰수입을 전면 금지한 1985년까지 일본, 북아메리카 등지에서 유입된 곰은 약 500여 마리. 이 곰들이 자연증식되어 2006년 현재 전국 90여개 곰농장에 1천 423 마리에 이르고 있다. (녹색연합. 곰사육정책워크숍 자료집, 2006, p.6) 이들 곰은 증식용으로 사육되고 있으며, 용도변경 신청을 통해서 의약가공품 (웅담) 으로 도축되는 것이 합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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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 세계에는 북극곰, 갈색곰, 회색곰, 안경곰, 반달가슴곰, 팬더곰, 느림보곰, 말레이곰 8종류의 곰이 있으며 이들은 멸종위기종이거나 멸종위기에 직면하여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1993년 멸종위기야생동식물 국제거래협약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 CITES 사이티스)에 가입했다. 1999년 사육곰 관리는 농림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되었으며, 2006년 현재 사육곰은 야생동식물보호법 (2005년 시행) 아래 사육곰관리지침의 적용을 받고 있다. 2005년 베트남(1000여개 농장, 약 4천여 마리)이 곰사육을 폐지하면서 이제 지구상에서 곰의 사육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300여개 농장, 약 7천여 마리)과 한국 뿐이다. 곰의 쓸개를 약용으로 사용해 온 한의학의 전통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한국사회는 곰을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로 인식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곰사육을 허가한 정부의 정책실패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사육곰. 정부의 정책실패로 고통받는 것은 사육곰 뿐만이 아니다. 오락가락했던 정책실패로 인해 곰사육농가와 지역주민 역시 고통을 받아왔다.        

2006년 12월 6일 오후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룸에서 한국의 곰사육정책을 놓고 소리없는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야생동물의 보전과 이용 사이에서 곰사육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곰을 전면 가축화하여 상업화하도록 하거나, 그 동안 곰사육농가의 피해를 고려하여 적정한 수준에서 모든 사육곰을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는 입장, 생명윤리와 동물복지의 차원에서 야생동물의 상업화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 생명정신과 생물종다양성의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이 문제를 곰사육농가와 환경단체의 갈등으로 왜곡하고 있는 정부. 간단한 것 같지만 매우 복잡한 고민의 한 가운데 현실적 대안에 목마른 대중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아마도 이 해결의 실마리는 한국 곰사육정책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곰사육정책의 오늘을 냉정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다음의 근거가 한국의 곰사육정책의 오늘을 진단하는 척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곰사육정책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정부의 정책실패다.

곰 상업화의 큰 장벽은 한국사회와 국제사회가 곰을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 일반인의 대다수는 곰을 야생동물로 인식하고 있으며, 웅담채취를 위한 곰사육에 반대하고 있다. (녹색연합*한길리서치, 한국 사육곰 및 웅담 관련 전국민*한의사 여론조사, 2005) 환경부가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투여하여 멸종위기야생동물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한국사회의 인식과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결과다.

[imgcenter|061227_108.gif|377|▲ [웅담채취 목적의 곰사육 및 도살에 대한 찬반 시민 설문조사]|0|0]

[imgcenter|061227_109.gif|400|▲ [일반인의 웅담 복용행위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한의사 설문조사]|0|0]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특히 멸종위기야생동물에 대한 국제사회의 흐름은 보다 강화되었다. 올해 유럽의회 반 이상을 차지하는 377명의 의원이 중국의 곰사육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였으며, 영국정부는 야생동물 및 야생동물 부위거래 규제를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한국의 곰사육정책이 국가 경쟁력을 보장할 것인가.

생명윤리, 생물종다양성, 국제여론에 호소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곰의 상업화가 경제성이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국내 웅담거래합법화와 도축년도 규제완화조치에도 불구하고, 높은 공급가 때문에 이미 한국의 한약재상 시장에서 한국산 웅담이 외면 받은지 오래다. 공급가를 낮추고 도축년수가 낮아진다고 해도, 곰을 야생동물로 인식하는 사회의 흐름을 역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야생 곰을 보호하기 위해서 곰을 사육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육곰의 소비수요와 야생곰의 소비수요가 경쟁적 비례관계에 있다. 세계동물보호협회(World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Animals, WSPA 위스파)에 의하면, 중국 사육곰의 수가 증가와 함께 1999년 약 4만 6천 5백여 마리의 야생곰 개체수는 최근 1만 5천 마리- 2만여 마리로 급감했다. 실제로 한국의 보신문화, 보신관광으로 인한 웅담수요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 기타 지역의 야생 곰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야생 곰의 수난과 사육 곰의 수난이 악순환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을 상업화하는 것은 오히려 한의학이나 동양의학의 생명가치존중의 정신을 거스른다. 곰사육을 합리화하는 웅담수요는 시장논리로 창출되는 것이다. 대안의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현대사회에서 웅담의 의학적 효능을 대용할 수 있는 대안약재를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미래세대에게 어떤 정신과 어떤 전통을 전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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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진단 아래 정책실패로 인한 고통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정부의 결단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이해당사자들과의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류는 수렵채집사회, 농경사회, 산업화사회, 정보화사회를 거치면서 자연과 생명을 도구화하고 착취해 왔다. 하늘, 땅, 바람, 물, 흙, 자연을 경외하던 인간은 더 이상 우주삼라만상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지 않는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내가 신고 있는 가죽신발이, 내가 입고 있는 털옷이,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 내가 바르는 화장품이 어떤 생명가치를 댓가로 나에게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와 너의 경계로 단절된 세상.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지 않는 문화, 우스꽝스러운 언어 잣대로 단절된 세상의 경계에서 야생동물도 아닌, 가축도 아닌 사육곰을 만난다. 그 잣대는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다.
  
곰사육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 곰사육정책실패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그리고, 정부를 움직이는 건강한 힘은 선거철마다 바뀌는 정치인의 헛 공약이 아니다. 법과 제도가 아니다. 그 건강한 힘은 나와 함께하는 생명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나의 변화에 있다. 야생동물보호, 회색도시를 떠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가능한 일이다.

새날이 밝아오고 있다.
한국 곰사육정책의 암울한 내일에도 새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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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녹색연합 사육곰캠페인 웹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곰사육폐지 서명운동에 함께해주세요!


■ 글 : 자연생태국 야생동물담당 최은애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