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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올무에 뒤덮인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오마이뉴스 강기희 기자
지난 이틀 동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자락의 바람은 차고도 싱그러웠다.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랬고 가끔씩 떠다니는 흰 구름은 바쁜 걸음을 한결 여유 있게 만들었다.
[imgcenter|070201_001.jpg|500|▲ 올무를 제거하고 있는 조사팀. ⓒ 강기희|0|5]
환경단체 녹색연합과 정선지역의 시민단체인 정선문화연대는 지난 1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가리왕산 자락에서 불법 밀렵 도구 제거와 야생동물 서식지 실태 조사를 했다.
첫날인 30일 오후부터 시작한 올무 제거 활동은 가리왕산이 불법 밀렵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올무는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발견되었다. 잡목 숲으로 들어가자 올무는 더 많았다. 동물들의 배설물이 있고 이동 통로라고 짐작되는 곳은 어김없이 올무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물들이 갈 곳이 없네요."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박정운 국장이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그는 전국의 산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많은 올무를 발견하기는 처음이라 했다. 올무는 철사로 만들어져 있으며 토끼를 비롯해 오소리나 너구리 등의 동물을 잡는데 쓰이는 밀렵도구이다. 철사 올무는 설치와 제작이 쉬워 밀렵꾼들이 널리 애용하는 밀렵도구이기도 하다.
녹색연합은 그동안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밀렵방지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멸종 위기종인 산양과 수달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백두대간의 경우 생활형 밀렵꾼보다 전문 밀렵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현장을 적발해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가리왕산은 노출된 밀렵 현장이 많다.
잠깐 사이 40여 개의 올무를 수거하다
[imgcenter|070201_002.jpg|500|▲ 밀렵꾼이 설치한 올무. 인간인들 올무로부터 자유로울까. ⓒ 강기희|0|5]
박정운 국장과 함께 온 활동가들은 작전을 펼치는 병사들처럼 몸을 낮춰 나무를 헤쳐나갔다. 무차별 설치된 올무는 동물들에겐 지뢰밭과 다름없었다.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닌데요."
원주녹색연합의 이승현 사무국장이 올무를 끊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떤 장소에는 올무가 여섯 개나 원을 그리듯 둘러쳐져 있었다. 동물이 갈만한 모든 길을 올무로 차단한 밀렵꾼의 행태에 놀랄 뿐이다.
"여긴 동물들의 로터리인가 봐요."
활동가들이 신기한 듯 밀렵꾼이 놓은 올무를 살폈다. 올무가 설치된 곳에는 배설물도 제법 많았다. 올무는 최근에 설치된 것도 있고 오래된 것도 있었다. 세월이 지난 올무는 나무를 파고 들어가 제거도 쉽지 않았다.
"같은 면적을 비교해도 다른 곳보다 올무가 훨씬 많습니다."
밀렵꾼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산자락이 민가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올무를 설치하기도 쉽고 동물이 걸렸는지 확인하는 일도 쉽다는 지리적 특성이 불법 밀렵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밀렵꾼이 놓은 올무를 다 제거하기란 인원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현장에서 올무 40여 개를 제거한 조사팀은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불법 밀렵 부추기는 보신문화
[imgcenter|070201_003.jpg|500|▲ 동물의 배설물. ⓒ 강기희|0|5]
[imgcenter|070201_004.jpg|500|▲ 포식자의 배설물, 다른 동물의 털이 배설물에 섞여있다. ⓒ 강기희|0|5]
장소를 옮긴 곳은 철사로 만든 올무보다 와이어로 만든 올무가 많았다. 와이어로 만든 올무는 멧돼지나 노루, 고라니 등 비교적 힘이 세고 몸집이 큰 동물을 잡기 위한 밀렵도구이다.
조사팀은 잠깐 사이 와이어로 만든 올무 6개를 수거했다. 산자락을 돌아가자 밀렵꾼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있다. 발자국을 따라 산을 오르니 철사 올무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올무가 지천이네요. 이래도 되는 건가요?"
조사팀은 밀렵꾼들의 극성에 혀를 찼다. 놓기만 하고 수거가 되지 않은 올무는 그 역사도 깊다. 밀렵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불법 밀렵은 계절을 가리지 않아 그 피해도 크다. 몸에 좋다는 이유 하나로 인간들에게 공격을 당해야 하는 동물들이 갈 곳은 대체 어디인지 한숨만 폭폭 나왔다.
"보신 문화가 문제입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멧돼지는 쓸개의 가격만 해도 100만원을 호가한다. 공급이 부족하니 사육하는 멧돼지를 산에서 잡은 야생 멧돼지라 속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고라니나 노루는 즉석에서 수거하기 보다 몇 년을 푹 썩힌단다. 살점이 썩고 뼈만 남았을 때 그 뼈가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다.
불법 밀렵에 대한 근본대책 세워야
[imgcenter|070201_005.jpg|500|▲ 와이어로 만든 올무를 제거하는 조사팀. ⓒ 강기희|0|5]
[imgcenter|070201_006.jpg|500|▲ 소나무에 묶인 올무, 단단하게 묶여 제거하기도 어렵다. ⓒ 강기희|0|5]
밤 시간엔 불법 밀렵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불법을 막기 위한 현실적 대안도 제시되었다. 전문 밀렵꾼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이 강조됐고, 생활형 밀렵의 경우 단속도 중요하지만 밀렵이 자연에 끼치는 해악에 대한 홍보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수렵과 밀렵을 함께 다루는 현행 법조항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환경부에서는 농사철 밭작물을 훼손하는 걸 방지한다는 이유를 달아 올무 설치를 허가해주고 있다.
올무는 지자체에서 관리하는데 봄에 설치했다가 가을철 수확이 끝나면 반환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불법과 밀렵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자체에서 공급하는 올무는 합법이고 마을 사람들이 놓는 것은 불법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활형 밀렵꾼들의 인식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31일엔 야생동물 서식지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가리왕산이 워낙 규모가 방대해 일정 지역을 샘플로 삼았다. 서식지 조사는 배설물을 확인하는 것으로 진행했다. 배설물은 토끼의 배설물이 가장 흔했다. 먹이사슬의 상위구조에 있는 삵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것들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고라니나 너구리 등의 동물은 한 곳에 배설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삵은 아무 곳에나 배설한다고 한다. 배설물이 곧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하는 상위 포식자의 습성이다.
이틀에 걸친 조사를 통해 정선문화연대와 녹색연합은 불법 밀렵에 관한 심각성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향후 시민들이 참여하는 '올무걷기대회' 개최하기로 했다. 생활형 밀렵을 막는 일이 한계가 있는 만큼 그러한 행사를 통해 밀렵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녹색연합은 지난 해 연말 울진에서의 야생동물 밀렵방지 캠페인 행사에 이어 2월 24일과 25일 이틀간 밀렵방지 캠페인을 연다. 장소는 미정이며 홈페이지를 통해 참가 신청을 받는다.
[imgcenter|070201_007.jpg|500|▲ 머리만 남은 오소리 사체. ⓒ 강기희|0|5]
2007-02-0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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