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봄날, 서울을 걷자

 활동이야기/백두대간       2009. 4. 10. 14:38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봄날, 서울을 걷자
서울성곽 순례길 안내서와 함께 하는 서울성곽 순례



[imgleft|002.JPG|300|▲ 서울 도심의 녹색축 서울성곽 |0|0]경칩이 지난 지 어언 한 달. 개구리는 버얼써 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고, 느티나무는 연두빛 새잎을 틔웠다. 골목마다 산들마다 목련, 개나리, 매화, 벚꽃이 춤을 추고 꽃대궐을 즐기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룬다. 주말에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아니 점심 먹고 잠깐이라도 걷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은 봄날. 출근길에 오른 버스를 타고 무작정 달리고 싶은 마음이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어디로 떠나볼까?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서울성곽 순례길. 마침, 녹색연합에서 ‘서울성곽순례길 안내서’도 나왔다. 어쩜- 이렇게 깜찍할 수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알록달록 지도도 예쁘고 해설도 친절하다. 서울성곽은 지금까지도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지만 구체적인 정보가 담긴 안내서는 거의 없었다. 개인적인 기행문 형태의 책이나 부분 부분 소개된 경우는 있었지만 서울성곽 전체를 순례하기 위한 안내서는 우리나라 최초다.

서울성곽은 서울의 4대문을 잇는 옛 한양의 도성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다. 성곽의 길이는 18.2km, 성곽 안팍으로 난 순례길의 길이는 약 23km이다. 안내서는 순례길을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구간별로 2~3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온 몸이 근질근질한 봄날. 이 안내서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효자손’같은 존재다.


그럼 안내서를 들고 서울성곽 순례길을 돌아보자.

숭례문을 시작으로 장충체육관에 이르는 구간은 남산 자락을 넘나든다. 서울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이름난 남산에 서울성곽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옛 식물원 자리부터 남산타워까지 오르는 계단이 바로 성곽을 따라 이어져 있다. 숲그늘을 따라 잠두봉 전망대에 서면 강북 한복판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데, 600년 전 서울성곽이 놓여있었을 내사산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지금의 빌딩숲과 옛 한양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서울을 재발견 하는 순간. 마치 조선의 도읍을 정하기 위해 부단히도 산을 오르내렸을 이성계가 된 듯 하다. 남산타워에서 잠깐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져 내려가는 성곽은 남산순환로를 따라 타워호텔까지 숨바꼭질을 한다. 자동차가 다니기 편한 길을 만들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바꼭질 끝에는 서울성곽 순례의 백미를 만난다. 타워호텔 뒤편에서 장충체육관까지 1km 구간은 성곽을 따라 산책하듯 걸으면서 역사, 문화, 생태는 물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오랜 역사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imgcenter|006.JPG|500|▲ 흥인지문부터 낙산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 |0|0]
장충체육관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는 도심을 지나는 구간으로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과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대로가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비교적 성곽이 잘 남아있는 산지 구간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공사가 한창인 동대문운동장에서 서울성곽의 흔치 않은 부속시설인 치성과 이간수문이 발견됐는데도 복원에 대한 계획은 크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진정 관광 활성화를 위한다면 삐까뻔쩍한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우리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성곽을 복원하는 것이 백배천배 가치있는 일일텐데 말이다. 반면,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흥인지문에서 낙산을 타고 넘는 구간은 성곽 안팎을 골고루 걸을 수 있도록 잘 꾸며놓았다. 낙산이 워낙 낮은 산이라 걷기에도 편할 뿐더러 서울에서 보기 힘든 오래된 골목과 집들, 개나리와 벚꽃, 느티나무, 단풍나무의 향연 속에서 말그대로 도심 속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imgright|007.JPG|200|▲ 7)북악산을 휘감아 도는 성곽 |0|0]혜화문부터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까지는 북악산 자락이라 할 수 있다. 성곽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주택가 골목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와룡공원을 시작으로 성곽의 제 모습이 나타난다. 아마도 북악산 구간은 서울성곽 전체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다. 청와대를 수호하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인 탓에 40년 넘게 출입이 금지되었었지만 2007년부터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개되어, 너무 많은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삼각산, 관악산을 벗어나 대안의 길과 대안의 걷기문화를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족두리봉부터 인수봉까지 병풍처럼 펼쳐진 삼각산을 한 눈에, 그리고 가슴에 담을 때의 감흥은 삼각산 정상을 정복하는 것 몇 배에 달한다. 문화재청에서 10시와 2시, 하루에 두 번 운영하는 성곽 해설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더없이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

창의문에서 남쪽으로 힘차게 뻗은 인왕산 구간에서는 서울이란 도시가 조금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조선의 도읍과 성곽의 자리를 정하기 위해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쏟은 정성이 서려 있기도 하고 서울 4대문 안의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삼각산을 배경으로 북악산과 인왕산을 넘나드는 성곽의 자태는 6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역사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의미로 되새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또 다시 도심에서 길을 잃은 서울성곽은 정동길의 근현대역사를 거쳐 현대의 숭례문에서 마무리 된다.

[imgleft|011.JPG|200|▲ 녹색이 그리워_떠나고 싶을 때, 서울을 걷자 |0|0]‘걷기’가 화두인 요즘, 서울성곽은 본격적인 자연문화탐방의 문을 연 새로운 개념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산꼭대기를 향해 욕심내어 오르기만 했던 ‘등산’을 뛰어넘어 산자락 아래에서 천천히 걸으면서 생태와 역사, 그 속의 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대안의 ‘걷기’를 시도하는 길이다. 끝내 지켜내야 할 서울 도심의 생태축이기도 하며,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한국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이 봄이 가기 전, 아니 언제라도 녹색이 그리워 떠나고 싶을 때, 멀리 갈 것 없이 서울을 걷자. 걷고 싶은 서울,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걸어보자.

* 서울성곽 순례길 안내서 문의 :
   고이지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 070-7438-8527


글 : 노상은 (녹색연합 시민참여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