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 시민강좌 4강 참가 후기

“이명박 정부의 짝퉁 녹색성장, 모르는 게 약일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순간들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뚜껑을 열고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해 고뇌가 시작된다. 일찍이 원효대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밤중에 달게 마신 귀한 물 한 바가지가 알고 보니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이어서 뒤늦게 속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지 않은가. 원효대사야 원체 큰 분이었던지라 이 일을 통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어 불교계에 한 획을 그었다지만, 속세를 살아가는 일반인이라면 끝까지 해골 물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여러모로 더 이로울 수도 있다. 국내의 모 해충방지업체는 이런 사실을 극대화한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음식을 먹다가 바퀴벌레가 몇 마리 나왔을 때 가장 기분이 나쁠까요?”
“정답은... 반 마리입니다.”

광고 사진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샌드위치의 한 쪽 면을 들춰서 그 속에 남아 있는 바퀴벌레 반 마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 차라리 몰랐더라면...

오늘날 난세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 무척 지치고 힘이 들 때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아,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아 버려도 그 순간에만 잠깐 속 편할 뿐, 진실은 사방에서 뻥 뻥 터진다. 사회는 나 하나가 침묵하고 있어도 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만 굴러간다.

현 정부의 ‘녹색성장’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속이 쓰렸었다. 또 뭔 짓을 하려고 녹색이란 이름까지 갖다 붙였을지 두려움만 앞섰다. 그 내용을 알아봤자 홀로 분노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신문을 덮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녹색경제 강의를 듣게 되었고 4강에서 이상헌 교수의 [‘저탄소 녹색성장’전략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통해 다시 ‘녹색성장’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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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파헤치고 지속 가능한 경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이 강의를 준비했다.”는 교수님의 말씀대로 이번 강의는 ‘녹색성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혀준 유익한 시간이었다. 환경자체를 보전하기보다는 성장을 지속하되, 그 방법을 녹색(친환경)으로 바꾸자는 ‘녹색성장’은 말만으로는 일순 그럴싸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그 실상을 알고 나면 누구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부실한 정책이다. 교수님과 함께 정부가 발표한 ‘녹색성장’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녹색성장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저탄소 정책임을 표방했으나 그 근거자료로 제시한 지표들의 수치가 선진국들과 비교해 봤을 때 실현 불가능한 수준으로 과장된 숫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imgright|20081217-002.jpg|300||15|1]예를들면 이렇다. 청와대에서 발표한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녹색성장 5대 비전(2008~2030년)>이란 자료가 있다. 이 5대 비전 중에 하나인 “에너지자립사회구현”에서 이것의 지표로 내놓은 ‘자주 개발율’을 보면 2006년 3.2%에서 2030년엔 무려 40%로 껑충 뛰어 있다. 과연 무슨 수로 이렇게 급격한 변화를 장담하는 것일까? 그 대책으로 내놓은 것 중에 ‘녹색기술’(자원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오염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 이라고 주장하는)이 있는데 이 녹색기술도 따지고 보면 새로운 에너지자원기술이란 기술은 다 포함시켜 놓았을 뿐 각 기술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현실화하겠다는 비전은 없다. 결국 여기서 ‘녹색성장’의 가장 큰 문제점이 드러난다. 교수님의 지적대로 “그럴듯한 것은 모두 모여”있는 종합선물세트표 정책일 뿐, 현실성과 방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근거 없는 수치로 점철된 주장은 현 대통령의 전형적인 “불도저” 방식을 답습한 허수아비 정책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고위험과 비효율의 핵연료(원자력)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확산하겠다는 주장은 불 길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을 얼마만큼이나 봉으로 보고 있기에 이렇게 허술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인가란 생각까지 들자 절로 분노가 일었다.

진실을 알고 난 직후에는 잠깐 속이 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으로 상처를 봉해버리면 더 큰 병을 키울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거짓의 환상 속에서 살 것인지, 진실의 현재에서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환상 속에선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지만 현실에선 기계에게 쫓기는 파리 목숨이다. 네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선택”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 우리에겐 이제 “선택”의 기회도 없다. (적어도 앞으로 4년 동안은) 또한 부실한 정책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늘 잡음이 끊이지 않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눈앞에 두고 단지 모른 채하기엔 우리 개개인의 삶이 이 사회와 너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은 저기 국회나 청와대에나 듣기 좋은 소리인 거 같다. 적어도 시민의 입장에선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게 낫다.

신문과 뉴스를 보면 속이 답답하고 쓰라린 분들께 “진실의 약”을 권한다. 잠깐 따끔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 될 것이다. ‘녹색성장’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파악했으면,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정광모, 시대의창  2008)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혈세가 낭비되는 현실, 대한민국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마무리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글 : 박재민 (4강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