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일하는 즐거움, 녹색일자리를 찾아봐

 녹색아카데미/생활·체험       2009. 11. 6. 10:44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화로의 고구마가 맛있게 익어가는 천막 안. 시골농부 공양희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도시를 떠나 20년째 경남 산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곧 그것을 경험해봐야 하듯이, 농사도 결국 나(인간)가 아닌 타자, 즉 식물을 경험해 보는 것, 그 자체입니다. 직접 해보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말을 이어가는 동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만족하는 삶,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듯 했다.

[imgleft|091106_02.jpg|332|▲ 귀농운동본부가 마련한 천막 안에서 공양희씨와 참가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0|0]지난달 29일~31일 동국대에서는 녹색일자리한마당이 열렸다. 청년들에게 녹색일자리를 알리기 위한 여러 행사가 진행됐고, 농업공동체, 협동조합 등 다양한 단체의 부스가 마련됐다. 공양희씨와의 대화도 귀농운동본부에서 준비한 인디언 천막 안에서 이루어졌다.  

녹색일자리가 뭐야?
사실 요즘 ‘녹색’이란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기업의 녹색비즈니스도 그렇고, 신재생에너지, 자전거타기 운동같은 것도 모두 녹색지구를 외친다.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이 제기된지는 오래되었지만, 요즘처럼 ‘녹색’에 많은 관심이 쏠린 때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예전엔 비교적 명확하게 느껴지던 녹색의 의미가 요즘엔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더군다나 4대강 사업이 녹색성장을 위함이고, 단기적 토목일자리도 녹색일자리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녹색’이고, 무엇이 ‘녹색의 가치’란 말인지 때로는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녹색일자리 역시 쓰이는 곳에 따라 의미가 제각각이다. ‘녹색’이란 추상적인 단어에 ‘일자리’가 붙었는데,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간단하게, 이렇게는 말해볼 수 있겠다. 녹색일자리란 ‘환경에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 인간도 행복한 일’이다.
즉 내 노동이 환경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녹색일자리의 개념이다. 이를테면 친환경 집을 짓거나 태양전지판을 다는 일, 아니면 자연의 품에서 농사를 짓는 일도 포함되겠다.

또한 녹색일자리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일, 즉 노동의 결과에 대한 보람이 되도록 노동자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 있는 일이다. 산업사회에서의 인간은 단지 반복적 노동을 위한 기계로 취급받는다. 효율과 성장을 위해 전문적으로 분업화된 일련의 작업들.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 안에서 우리가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녹색일자리는 이러한 산업화된 회색일자리를 지양하고 인간이 일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녹색’이란 말처럼 녹색일자리 또한 석유경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했기에, 그 안에는 무리한 개발로 인해 황폐화된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한 대안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녹색일자리의 범주는 평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이렇게 되면 왜 대안교육, 자활센터 같은 단체도 녹색일자리한마당에 참여했는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꼭 환경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지 않더라도 이들 단체는 자연과 이웃이 더불어 잘 살 수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녹색일자리한마당 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녹색일자리모음집을 보면 그 단체와 직종이 매우 다양하다. 농업 관련 단체들은 귀농 희망자 이외에도 교육 지도자, 마을 경영자 등을 지원 받으며 그 외에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사회적 기업, 대안교육, 환경단체 에서 각종 활동가, 실무자, 교육자를 모집한다. 이 날은 녹색일자리한마당에 참여한 아이쿱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부스면접을 통해 두 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있었다.

[imgright|091106_03.jpg|380|▲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대안교육연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설명을 듣고 있다 |0|0]생각을 조금 바꿔본다면
오늘도 많은 청년들은 스펙을 쌓으며 취직을 준비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이들 모두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오직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기에, 몇몇 수출 대기업, 또는 그곳에 취직한 일부 소수만을 승자로 대우한다. 때문에 대다수는 취업경쟁에서 낙오되어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이들은 꿈꾸던 일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안을 선택하지만,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취직에 성공한 사람도, 그 중 많은 수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녹색일자리한마당의 실무를 담당했던 신임수진씨는 이번 행사를 통해, 청년들에게 다른 방법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 일을 준비하면서, 녹색일자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조금만 생기고 또, 이 일이 나랑 맞나? 하는 관심을 갖는 사람이 단 두 사람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복잡하고 답답한 친구들도 많고, 관심은 있어도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도 있을텐데, 이들에게 정보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처럼 토익 점수에 매달려 경쟁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사람은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요.’

앞서 공양희씨는 녹색일자리에 대해 ‘단어가 와 닿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일’이라고 표현했었다. 신임수진씨의 마음도 그와 같은 것 아니었을까. 취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것 말고도, 승진과 연봉을 위한 성공에만 매달리는 것 말고도,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는 조금만 다르게 생각을 전환시켜 보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물론 녹색일자리가 청년실업의 전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아직 우리 정부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성공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녹색, 녹색 마치 유행처럼 번져서, 자칫 녹색의 진정한 의미마저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요즘. 녹색의 가치나 녹색일자리라는 것이 우리와 분리된 거창한 무엇은 아니다. 그것은 곧 환경도 살리고 이웃도 행복할 수 있는 일, 돈을 벌면서 내 자아도 찾을 있는 일이다. 삶에 대한 관점을 반대로 바꿔보자. 거기에 하고 싶게 만드는 일과 행복한 삶이 있다.

글 : 김종은 (녹색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