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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일상을 반복하다, 문득 녹색연합 <서울성곽,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로 참가한 녹색연합 행사인데, 화장한 날씨에 낯익은 얼굴의 활동가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셔서 친숙한 분위기로 참여할 수 있었다. 동반인과 함께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오신 분들도 계시고 씩씩하게 혼자 오신 분들도 계시고, 오랜만의 산행을 하게 된 나는 보고 싶었던 선배를 불러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들이 가는 것 같은 설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성곽길의 특별함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생태관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지자체마다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숲길과 바닷길, 마을길들이 생겨나면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걷을 수 있는 기회들 역시 많아지고 있다. 서울성곽길은 빈틈없이 빽빽하게 밀집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자연과 역사를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길이라는 의미가 있다. 서울성곽에 담긴 역사이야기와 함께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나무와 숲, 풍경들은 짧지만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도심 속 걷기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연합 김성만 활동가의 해설로 시작된, 이 날의 성곽길 탐방은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의 3시간 코스였다. 성곽길이 시작됨을 알리는 혜화문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근현대가 공존하는 듯 한 성북동 주택가의 골목풍경과 성벽돌 위에 지어졌다는 건물들은 전통과 역사, 현대가 무심하게 뒤섞여버린 서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성곽길에 흐르는 역사의 흔적과 가을숲의 정취
골목길을 벗어나 도착한 작은 공원에서 나무계단과 오르막길을 지나니, 본격적인 성곽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벽이라는 옛건축물을 통해 만나게 되는 역사의 흔적과 선조들의 지혜에 대해 감탄하면서 무엇보다 600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티고 있는 성벽의 견고함과 웅장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현재 서울시가 서울성곽에 대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 곧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일요일이라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가운데,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말바위 쉼터-신분증 확인 후 발급해주는 명찰을 착용해야만 지나갈 수 있다-와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소나무숲, 음기가 들어온다고 해서 닫혀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는 숙정문을 지나면서 푸른 하늘 아래 물들어가는 가을 숲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면, 드넓게 펼쳐진 서울의 전경 역시 서울성곽길의 매력적인 풍경이다.
백악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숙정문과 곡장을 지나면 최근 KBS 1박2일에도 소개된, 총알 맞은 소나무로 유명한 1․21사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좁은 계단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까 이미 서울성곽길의 명물로 유명해진 듯 했다. 성곽길 계단을 올라가다 우연히 마주친 한 쌍의 도마뱀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쌓여가고 편리를 위해 설치된 인공적인 계단과 철조망들이 이 숲 속을 점령하였지만, 무엇보다 살아있는 생명들이 숨 쉬는 공간임을 살아있는 생태계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만남이었다.
끝없이 이어질 거 같던 내리막길의 계단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코스의 마지막 도착지 창의문에 도착하니, 나름함과 아쉬움이 함께 몰려왔다. 짧은 시간 안에 성곽길의 모든 이야기와 풍경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솔향기에 취한 듯 마음은 그윽하고 한가해졌다. 도심 속 숲 속 공간에서 역사의 흔적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서울성곽길에 언제나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바란다.
글 : 류희수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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