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eet |
“요즘 우리 딸내미가 학교에 가는데, 개미를 밟을까 봐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지각을 한다고 합니다.ㅠㅠ” 지난 금요일자 신문을 읽다 ‘이 주의 리트위트(RT)’로 뽑힌 글을 읽고 한참을 웃었다. 아휴, 뉘 집 아이인지 정말 귀여워!
땅에 고개를 콕 처박고 조심조심 걷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그려졌다. 학교엔 가야겠는데, 세상에, 보도에 웬 개미가 이리 많은지 도무지 한 발자국도 제대로 뗄 수가 없다. 무심코 밟으면 죽고 말 테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그런데 이를 어쩐다? 지각이다! 콩닥콩닥,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하지…?
이런 장면을 상상하며 혼자 기분이 좋았던 것은 요즘 이런 엉뚱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좀처럼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직업이 어린이 과학 잡지 기자다 보니 평소 초등학생들을 볼 기회가 많은 편이다. 더구나, 틈틈이 시민단체에서 어린이기자단 자원교사 일도 하고 있어 환경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도 자주 만난다. 그런데 개미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길 위에서 쩔쩔매는 저 아이 같이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는 보기 드물다. 대신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아이를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환경을 지키는 기술, 자연을 해석하는 과학 등등. 그런데 아이들의 궁금증에 대답을 해 주다 보면, 때때로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아이들은 이런 지식을 얼마나 절실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지난주의 삽화 하나. ‘오션스’라는 해양 다큐멘터리의 어린이 시사회에 취재를 간 일이 있다. 초대받은 초등학생들과 학부모 등 100여 명은 경이로운 바다 생물의 모습에 연신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사람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동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범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상어가 고기잡이배에 잡혔다 놓여나는 장면이었다. 어부들이 사람 키만 한 상어를 물 밖으로 끌어올린다. 뒤이어 손바닥만 한 물건을 배 위의 빨랫줄에 건다. 그리고 상어를 ‘방생’한다.
그런데 사실 상어는 살아난 게 아니었다. 빨랫줄에 걸린 것은 상어의 지느러미. 사람들은 요리 재료로 비싸게 팔 수 있는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아직 살아 있는 상어를 그대로 바다에 버린 거다.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는 헤엄을 치지 못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바닥에서, 상어는 몸 한 번 뒤집지 못하고 아가미로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솔직히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걱정했다. 어린이들이 훌쩍거리며 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영화가 다 끝나고 해양연구원에서 온 박사님과 아이들이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에도 상어에 대해 질문하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알고 싶어 한 것은 숫자나 이름이었다. “케이프가넷이라는 새는 시속 몇 km로 날아가나요?” “성별이 바뀌는 물고기는 또 뭐가 있나요….”
즐겨 듣는 이상은 씨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던 너와 부딪혔어. 함께 웃음이 나왔어. 하늘이 투명해서 너도 빛났지….” 이 노래의 후렴 구절은 이렇다 : “혹시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사람이 너일지도 몰라서….”
실제로는 이런 사람, 오래 기다려도 보기 힘들다. 꽃 한 송이 밟지 않으려고 스텝을 꼬아 가며 뒷걸음질 치는 어른을 나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개미를 밟을까 봐’ 조심조심 갈지자걸음을 걷는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만약 실제로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만화 주인공이라도 만난 것처럼 신기한 기분이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면 다르다. 꽃 한 송이 꺾일세라 포복을 하고, 벌레 한 마리 죽일까 걱정돼 학교 가길 포기해도 이상할 것 없이 마냥 귀여운 게 어린 아이다. 어린이의 이런 행동은 지식에서 생기지 않는다. 감수성에서 나온다. 자연을 많이 접해서 친숙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길 때 생기는 감수성….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점점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을 분석하거나 지식으로 이해하는 데에만 능한 아이들이 늘어난다면….
어차피 우리는 커가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꽃이나 개미를 밟더라도 지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질 치는 어른을 보기 어려워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슬픈 사실이다. 하지만 연약한 생명을 가여워 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면 그건 더욱 슬픈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부디 개미를 피하다 지각하는 어린이들이 더 늘어났으면. 그리고 그 사실을 흐뭇하게 리트위트하는 어른도 지금보다 많아졌으면, 하고.
글 : 윤신영 (녹색연합 회원)
'회원이야기 > 회원참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Balance Our Earth! (2) | 2010.11.10 |
---|---|
함께 걸어 좋은 서울성곽길 (2) | 2010.10.25 |
通 한다는 것... (2) | 2010.07.13 |
쓰레기에 대한 명상(Meditations on Trash) (0) | 2010.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