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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350여만 마리가 넘는 소, 돼지를 창졸간 죽음에 몰아넣었던 구제역이 엊그제 영천에서 다시 발생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대규모 살처분 국면의 최종 배후에는 우리의 과도한 ‘육식문화’와 그로 인한 초밀집형 공장식 축산이 자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자연 상태에서 돼지들은 하루에 50킬로 가까이를 돌아다니며 친밀하게 사교활동을 하고 같은 집단내의 돼지를 서른 마리까지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장돼지들은 태어나서 도축장행 트럭에 오를 때까지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인간의 편견과 다르게 상당히 영리하고 예민한 동물인 돼지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자해를 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행동을 수천 번씩 반복하며 인간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미쳐가지만 그런 행동에 주목하는 농장주는 아주 드물다.닭들의 조건은 훨씬 더 열악하다. 7주 정도가 평균 수명인 닭들은 성장촉진제를 듬뿍 먹고 출생 당시의 몸무게의 100배로 성장해야만 하므로, 체중을 이기지 못해 다리가 휘어지거나 부러지고, 그 짧은 생애동안 관절염에 시달리기도 한다. 산란용 닭도 끊임없이 생산해내야만 하는 달걀 때문에 체내 칼슘부족으로 인한 골절이 다반사이다.
얼마 전에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Ho Chao-Ti라는 대만 감독의 <나의 신상구두>라는 영화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어난 지 12시간 안에 다시 죽어야 하는 송아지들을 보았는데 이 송아지들에게는 물도, 어미의 젖도 공급되지 않는다. 탈진한 상태로 생후 12시간 안에 목의 동맥이 끊겨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모아진 피는 혈청연구를 위해 제약회사로 보내지고 송아지의 가죽은 뉴욕의 최고 멋쟁이들의 고급 하이힐로 거듭나게 된다. 고작 열두 시간을 살기 위해 태어나야만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인간 이기심의 극한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년에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라는 영화를 찍으며 먹보라는 10살짜리 황소와 두 달 동안 전국을 주유하며 우정을 쌓았다. 먹보는 황소 특유의 뚝심과 인내심도 있었지만 내가 익히 ‘판단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각과 풍부한 감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친구들에게 억울하게 맞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먹보가 주인공 배우를 쳐다보는 시선은 분명 우리가 ‘연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또한, 동해안 바닷가 드넓은 백사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바다라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상과 향수를 먹보도 동일하게 느낀다는 것을 감지했는데 그것이 결코 나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작년 연말 내내 구제역이 발생 할 때 마다 먹보네 동네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먹보가 죽임을 당할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먹보와 다른 소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소는 먹보이며 돼지와 닭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먹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모두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미각과 영양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어떤 참혹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만이 농장동물들의 복지를 증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자 품격이다.
글 : 임순례 감독(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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