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완화만이 능사인가?

 활동이야기/환경일반       2009. 6. 9. 15:29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인터넷 검색기로 ‘규제’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뉴스를 검색해보니 단연 ‘규제완화’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가 많다.
규제완화는 선거때마다 공약 1순위였고 정부 민원의 많은 부분도 규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나 경제문제나 투자유치 등과 연관해서는 늘 ‘규제’가 걸림돌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Positive 방식의 규제완화’인 ‘선(先) 완화, 후(後) 규제’ 원칙을 세웠고, 16개 정부부처는 각종 규제완화 대책을 내 놓고 있다. 이번 정부는 공공의 역할 축소,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바탕으로 친기업과 경제활성화를 국정 기조로 설정하였다.  최근에는 한시적으로 280개의 규제를 유예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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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환경의 날을 맞아 한국환경회의에선 환경규제의 공공적인 기능을 살펴보고 최근의 환경규제완화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환경규제완화정책을 진단한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진행했다.

‘공장 하나 짓는데 절차가 수백 가지더라’는 말이 풍기는 느낌은 규제는 절차 위주에 복잡하고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며 투자와 경제를 발목잡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덩어리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3일 한국환경회의가 주최한 ‘환경규제완화정책을 진단한다’토론회에서 전재경(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이사)님은 ‘규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에 대해 지적하며 규제 특히 환경규제의 공공적 기능에 대해 발표했다.

흔히 규제가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오해하지만, 실제 정부규제는 환경규제를 포함하여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규제로 정부개입이 있으며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 대한 민간감시의 장려는 은행의 이행을 증진시키고 불량채권을 감소시키면서 은행의 안정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모든 성공적인 시장경제가 한 벌의 규제체계에 의해 감시되며 경제성장을 오로지 재산권의 공으로 돌리고 규제의 공으로 돌리지 않는 것을 닫힌마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이나 유럽이 최근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은행 국유화 수준의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와 달리 우리 정부가 여전히 규제완화를 외치는 것은 세계적인 경제주기의 파동과 10년 즈음은 어긋나 있으며 이 파동이 안 맞을 때 더 큰 혼돈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늘 정부는 규제개혁을 외치면서 그 결과는 규제완화지만, 실제 개혁은 완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화일수도 있다. 전재경 님은 규제완화는 보호법익이 한쪽으로 치우쳐 국민 전체의 기본권이 고려되기 보다 기업가의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 외국자본의 수익활동이 국내자본보다 우대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런 결과 환경비용은 여전히 외부화되고 환경책임의 소재도 형해화(形骸化 )되어 환경권과 환경정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가의 재산권과 국민일반의 환경권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환경규제 개혁의 영역에서는 환경오염 피해자와 미래세대의 환경궈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야별 토론에선 최근 진행되고 있는 환경분야의 규제완화 중 자연공원법 완화, 토지이용규제완화,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다뤘다.

[imgleft|20090609_21.jpg|320| |0|0]국립공원 구역조정과 자연공원법 규제완화에 관해 발표한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 님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환경부가 추진한 첫 번째 일이 케이블카와 관련된 법령을 손질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공원법 개정을 통해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 석악산 대청봉 일원 등 생태적 민감도가 높고 훼손지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 안에 더 길고 높게 케이블카를 건설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이번에 개정되는 자연공원법에선 케이블카 거리규정을 5킬로미터까지 늘리고 정류장의 높이도 15미터로 완화했다. 국립공원 한복판에 5층 규모의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또한 사유지가 많은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특성을 고려한 용도지구제도의 변화는 필요하지만 단순히 5개 용도지구에서 3개 용도지구로 단순화하고 공원법을 위반한 경우에도 과태료 수준도 낮추고 국립공원 안에 식물원, 어린이 놀이터 등의 시설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이런 배경에는 국립공원마저도 다른 관광지처럼 하나의 개발자원으로 보는 인식이 있다. 윤주옥 님은 이번 자연공원법 개정안은 국립공원제도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토지이용규제는 현정부에서 기업규제와 산업입지규제와 함께 핵심적인 규제, 즉 완화 대상으로 등장한 규제라고 변창흠 (환경정의 토지정의센터장, 세종대 교수) 님은 말했다.
토지이용규제 완화를 통한 토지의 공급 확대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정부의 정책을 유도하며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역대정부에서부터 선호되어 온 수단이었다고 한다.
각 부처에선 앞다투어 산지 및 농지 규제 완화, 상수원 공장입지 관려 규제 완화에 나섰고 특히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2020년 까지 국토면적의 3%에 해당하는 약 3,000㎢의 도시용지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전제에 대규모의 토지이용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를 밝혔다.
변창흠 교수는 지난 50만년 간 남한에 사람들이 살아온 도시규모가 국토의 6% 수준이라며 정부의 안 대로라면 11년간 이를 9%로 늘리겠다는 무용한 구상이 나온 배경이 외국과의 도시용지비율을 단순비교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도시용지가 8.3%고 영국이 14.4%인데 국가마다 도시용지의 개념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도시용지의 확대만 주장하고 있다.

건교부와 국토연구원, 수도권 3개, 지자체 3개의 연구원들이 8년에 걸쳐 연구해 마련한 기존의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을 현정부에서는 보금자리 주택건설, 경인운하 추진, 산업단지 조성등을 이유로 아무런 연구조차 없이 수정해 발표해 버린 일은 현 정부가 얼마나 세밀한 접근없이 단순확대만으로 토지규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차치하고 규제를 완화해 토지를 확대하면 토지가격이 안정되느냐, 수도권 경쟁력이 올라가느냐하면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는 데 더 문제가 있다. 규제완화로 인한 토지수요가 창출되는 곳엔 투기수요가 함께 창출되어 공급증가에도 불구하고 토지가격이 하락하지 않고 수도권에서 이런 현상은 불볼듯 뻔하다. 또한 수도권 규제완화로 개별기업의 비용은 절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에 도시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수도권 집중을 유발해 삶의질도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현정부에서 가장 큰 환경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정비사업에서도 각종 환경규제완화 사례는 잘 나타나고 있다고 박진섭(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님은 발표했다.
국가재정법 상 총사업비가 500억 이상이고 국가재정규모가 300억 이상이면 예비타당상조사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설조항을 만들어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통해 국가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기획재정부장관이 정하는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토록 했다. 국회에서 제정한 법을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시행여부 자체를 면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천법 상 상위계획인 유역종합치수계획이 마련되지도 않은 채 하위사업인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위법에 해당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4대강 유역 주변의 문화재 지표조사도 약식으로 간소화하거나 생략했고 환경영향평가와 사전환경성검토를 동시에 추진하려 하고 있다. 4대강 대부분의 구간이 자연환경보전법, 습지보전법, 야생동식물보호법, 산지관리법 등 20여 가지의 법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법이 무시되거나 완화되어 적용되는 탈법적인 일이 4대강 정비사업에서 버젓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는 속성상 한번 완화되면 다시 강화되기 어렵고 특히 환경규제완화로 인한 피해는 다시 복원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 세대뿐만 미래세대에까지 간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된다. 각 분야의 규제가 풀려 소수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고 결국 대다수의 국민들과 자연생태계, 미래세대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는 이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글 : 정명희(녹색연합 정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