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 생명나무 뿌리를 내리다.

 회원이야기/회원참여       2007. 8. 29. 16:00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해서 어디로 떠날까 궁리하던 중 부산일보 한 귀퉁이에 난 녹색연합 생태명상농활 소식을 보고 이거다 하는 생각으로 휴가 계획을 드디어 정하게 되었다. 대학 때도 한 번 가보지 못한 농활엘 이제야 가리늦게 가려한 것은 익숙한 녹색연합 주최에 그것도 생태와 명상과 노동이라는 탁월한 주제로 늘 실속형을 추구하는 나에게 딱 안성맞춤의 여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농활의 특색은 산서에 있는 젊은 귀농인들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일손을 돕는 것이었다. 20대에서 40대의 젊은 귀농인들의 가정은 적게는 3개월에서 많게는 10년 내외의 귀농이력을 가지고 생태적 삶을 위한 자발적 귀농에 걸맞는 유기농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이 시기 농촌은 그다지 바쁜 철이 아니라고 하나 말 그대로 화학비료와 기계를 쓰지 않고 퇴비와 몸소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지는 유기농업은 그만큼 많은 손과 사람의 몸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작업이 시작되는 다음날 아침(8/22). 여름에는 한낮의 불볕더위를 피하고자 아침 6시경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집은 ‘생강밭 김매기’. 제초제를 쓰지 않기에 생강밭은 그대로 생강반 풀반이었다. 처음으로 낫질을 하며 풀을 매는 것은 새로운 놀이같이 시작되었지만 점점 뜨거워오는 햇살을 등 위로 받으며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 풀을 베는 것은 분명 힘든 노동이었다. 그러나 힘겨움도 잠시, 안주인께서 가져온 감자전과 막걸리의 아침 새참으로 노동 후의 기쁨을 맛보았다.

오후에는 그동안 비가 자주 내려 단호박 모종들이 많이 상해 버려 남아 있는 단호박 모종들을 밭에 옮겨 심는 작업이었다. 오후 내내 비가 내려 질퍽해진 땅에 호미로 땅을 파서 하나하나 단호박 모종을 심는 작업에 첫 날 우리의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느끼고 모두들 지친 기색이었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손이 많지 않은 데다 일도 서투른데 도와드리는 것에 비해 늘 무엇이든 해먹이려 하는 마음이 더욱 미안할 따름이었다.

셋째날(8/23)의 일정은 집 주인의 손과 정성이 베여 있어 유난히도 집이 예쁘고 잘 정돈되어 있는 욱이네에서 막걸리 빚기와 떡하기 그리고 퇴비 섞기 작업이었다. 오늘 우리가 담은 술은 적어도 열흘정도는 발효시켜야 하지막 단호박 시루떡은 금방 만들어 내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이 집의 주종목은 직접 섞어 만드는 퇴비로 유기농 재배한 콩으로 된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이 집 주인은 고운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자립하는 삶, 평화로운 삶, 여유있는 삶, 나누는 삶’을 짓고 있었다.

오후에는 탄저병으로 고추밭을 다 망쳐 버려 오늘 통째로 고추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이었다. 그이는 귀농한지 3개월 정도 된다고 하는데 고추밭을 통째로 베어내면서도 우리에게는 늘 배려와 여유를 아끼지 않는 친절하고 낙천적인 농부인 것 같았다. 닭들이 뛰어 노는 고추밭에서 잘라낸 고추나무를 옮겨내는 작업이 끝나자 안주인은 다시 푸짐한 한 상을 차려낸다. 늘 일한 것보다 더 많은 걸 받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웠다. 가난하지만 나누어서 늘 풍요로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넷째날(8/24)의 일정은 병무네 고추따기였다. 말그대로 수확이다. 빨갛게 메달린 고추밭에서 붉고 예쁜 고추를 따면서 들었던 스팅의 노래(‘문 오버 더 버번 스트리트’)는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침일을 마치고 병무네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7월에 갓 태어난 아기도 보았다. 한 낮의 햇살을 피하며 다시 오후 일과를 준비하는 것이다. 집주인의 민요소리와 안주인의 가야금 가락도 들을 수 있었다. 노동은 힘들고 생활은 넉넉지 않아도 멋과 맛이 살아있는 삶을 만났다.

다섯째날(8/25)은 영철이네 콩밭 풀베기였다. 콩밭의 풀도 베고 알감자 심을 퇴비도 뿌리는 작업이었다. 멋진 산사나이 같은 집주인은 작년에 농사일 중에 사고로 발가락 한 개와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셨다. 점심 후에 처음으로 계곡에 발 담그러 함께 떠나 더위와 피곤을 잠시 달래었다.

나는 마지막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고 일행들을 남기고 부산으로 향해야 했다. 막상 집으로 오는 짐을 꾸리자 그동안 몰랐던 피로와 긴징감이 그제서야 녹아내리는 듯 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6시간의 기차 안에서 무언지 모르는 뿌듯함이 뱃속 가득히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참 좋은 여행이었구나. 자립과 생태의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귀농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용기가 새삼 부럽고도 높아보였던 시간이었다. 이번 생태명상농활 동안 사람에게 일과 밥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를 노동명상으로 그리고 식사명상으로 가슴 깊이 느꼈던 것 같다. 흔치 않은 귀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녹색 연합에 고마움을 전하며, 집으로 돌아와 김영동의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못다한 108배를 하고 싶다.

                                                                                                      김진숙(녹색연합 생태농활 참가자)

[imgcenter|070829_001.jpg|435|▲ 창밖으로 조용히 익어가는 들녘의 벼와 함께 더운 여름 낮잠에 취한 아이의 모습에서 농촌의 한가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0|2]
[imgcenter|070829_002.jpg|580|▲ 똥살리고 땅살리는 거름만들기.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않고 깻묵과 쌀겨, 인분, 풀들을 이용해 거름으로 사용한다.|0|2]
[imgcenter|070829_003.jpg|580|▲ 또하나의 유기농 농부 우렁이. 어렸을 때부터 잡초를 먹어 제초제로 인해 오염되는 땅을 막아준다.|0|2]
[imgcenter|070829_004.jpg|580|▲ 술빚기. 우리의 전통 술인 막걸리를 빚으면서 농촌의 향에 더욱 취해본다.|0|2]
[imgcenter|070829_005.JPG|580|▲ 힘들지만 즐거운 노동을 위해 트럭에 올라. 농촌의 노동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동시에 살리는 노동이기에 힘들어도 마냥 즐겁다.|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