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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딱히 어느 때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눈길은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땅바닥 한구석 모퉁이의 흙뭉치 한 줌에서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이다. 무심한 사람들은 마구 밟고 다니거나 잡초라며 뽑아버리기 일쑤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때만 되면 알아서 피고지고 또 피어난다. 그 존재가 아주 작고 미미해서 그냥 지나치면 존재조차 알 수 없고, 설사 본다한들 작은 생명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기회가 된다면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매일 지나치는 아파트 앞뜰에 정겹게 피어나는 잡초라는 이름의 친구들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화단의 꽃들이 크고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분단장하고 나서는 잔뜩 꾸민 여자의 모습이라면, 잡초 속에 숨어 있는 꽃들은 수수하다 못 해 수줍기까지 한 시골처녀의 느낌이다. 돋보기를 대고 확대해 보면 깨알 같은 그 꽃 속에 있을 건 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발견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그것은 단아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잡초는 잡초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잡초가 되었을 뿐이다. 아침 저녁으로 오가며 인사하던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화단에는 어떠한 잡초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간들의 이상한 이기심이 빚은 결과이다. 잡초 보다는 그냥 흙이 보이는 땅이 깔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삭막한 맨 땅이 그리 좋아 보이는가? 잡초 친구들이 있는 땅을 보라! 아무리 가물어도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고, 그 속에는 잡초에 기대어 사는 숱한 벌레 친구들이 공존한다. 지렁이도 엉덩이를 내밀고 볼 일을 보고 들어간다. 작은 그늘 공간이 만들어 내는 마력은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딱딱해진 땅은 어떠한 생명도 허용치 않겠다는 고집 센 인간의 독선이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들로 산으로 뛰어 다녔던 기억뿐이다. 변변한 장난감도 없었지만 우리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온 산과 들의 자연물이 바로 우리의 놀이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모든 자연의 맛은 다 본 것 같다. 진달래의 달큰한 풋내와 찔레의 쌉쓰레하면서도 떫은 맛은 지금도 혀 끝에 남아 있다. 봄이면 올라오는 삘기를 뽑아 질겅대며 씹었는데 그 맛은 무어라 표현하기 곤란하다. 향긋한 풀내음에 단 맛도 좀 있었고 찰기도 있었는데... 그 맛은 요즘 어떤 산해진미에서도 느낄 수가 없다. 오롯이 자연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천연의 맛인 것이다. 지금도 여름이면 나는 까마중을 찾아다닌다. 물 많은 까만 열매를 따 먹는 그 신선한 맛이란... 어느 과일이 그런 맛을 낼 수 있을까? 봄이 되면 소쿠리 하나 들고 쑥이며 냉이 캐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요즘의 도시 아이들은 이런 자연의 맛을 모른다. 아니, 맛 볼 기회조차 없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요즘 어머니들은 이런 걸 입에 넣으면 ‘애비~’하면서 손사래를 칠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환경수업에도 봄나물 캐서 요리해 먹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있고 인기도 있다. 젊은 어머니들에게는 본인들도 체험해 보지 못 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면 봄나물을 많이 팔고 있지만 그것을 사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연세 드신 분들이다. 그 맛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만이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세대 주부들은 모르는 봄나물에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도시 주변의 나물을 그냥 먹기엔 좀 꺼려지는 면이 있기도 하다. 온갖 공해요소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봄만 되면 비닐봉지 하나 들고 집 앞 냇가로 나가게 된다. 소리쟁이의 신맛을 가장 먼저 볼 수 있고 냉이의 향기도 일찍 맡을 수 있다. 어린 봄 쑥의 향기는 압도적이며, 지금쯤 올라오는 명아주의 여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으면 딱이다. 아~ 개망초의 여린 순도 얼마나 맛난지 모른다. 가끔 화단에서 화살나무의 잎을 조금 훑어 올 때는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아삭한 맛을 볼 수 있을테니...
한때 산나물 따러 가는 여행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관광객들을 산에 풀어 놓고 마구잡이로 채취를 시켰었는데 요즘은 어쩐지 모르겠다. 나물을 채취할 때도 정도라는 게 있다. 다음 해를 생각해서 뿌리를 남겨 주든지 솎듯이 채취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할 리가 없어서 문제가 되었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인간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인간일 것이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녹색성장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발전이 먼저이며 인간이 먼저가 되고 만다. 정녕 공존이란 어려운 일일까? 우리가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 공존’이 되어야 한다. 난 오늘도 작은 것들에 매료되어 발아래 작은 잡초의 세계와 공존하길 갈망한다.
글 : 백수영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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