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녹색연합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사회교과서에서 대표적인 시민단체의 예시로 사진 하나와 함께 소개 글 두 줄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 때에는 그저 자연을 좋아하는 어른들끼리 모여서 만든, 길거리에서 두꺼비나 황새 등의 멀게만 느껴지는 멸종 위기종을 알리는 그런 단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내가 녹색연합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녹색연합에서 주최한 청소년 생태캠프에 다녀오면서부터였다. 학교에서의 무미건조한 수업의 탈출구를 모색하던 내게 녹색연합은 환경이라는 새롭고도 어려운 ‘학문’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 후로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등학교 입시가 다 끝나가는 3학년 2학기 말, 나는 다시금 녹색연합을 찾게 되었고, 저번 주말에 대관령을 다녀왔다.

[imgcenter|0416.jpg|600|▲ 영동,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 옛 고갯길, 오른쪽 대관령 옛길은 해발 140미터의 대관령박물관에서 시작, 960미터의 고갯마루를 지나 865미터의 대관령휴게소에서 끝난다 |0|0]
강변역에서 모였던 그 토요일 아침은 유난히 추웠다. 가평에서 등교하는 내가 믿지 않을 정도로 그 날 서울은 얼어붙어있었다. 그런 그 날, 녹색활동가 선생님들과 다른 참가자들, 그리고 기사 아저씨와 함께 우리는 대관령으로 출발했다. 노란색 유치원 버스를 가득 채운 우리는 어색한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백두대간의 의미와 이번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두대간은 우리 한반도의 생태 축이라고 불릴 정도로 생태적 가치가 깊은데, 최근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신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나친 관심, 그리고 여러 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힌 나머지 찬 밥 신세가 되었다는 선생님의 걱정 섞인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바람 잘 드는 대관령에 풍력발전기 몇 대 들어선 것, 그리고 산의 초지화가 과연 얼마나 나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imgcenter|0653.jpg|600|▲ 대관령 옛길 주막터에서 함께 한 참가자들 |0|0]
그렇게 고민 반, 졸음 반으로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한참 뒤 눈을 떠보니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새로 뚫린 고속도로가 아닌, 옛날에 사람들이 이용하던 그 옛길을 가기 위해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로 타고 올라갔다. 대관령 마루에 올라선 우리는 바람의 격렬한 포옹을 얼떨결에 받으면서 활동가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대관령의 기운을 기대하며 6km의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적한 기운을 원했던 우리는 영동고속도로 앞에서 무너졌다. 고속도로의 소음 때문에 간간히 있는 새집은 비어있었고, 정부 차원의 자칭 숲 가꾸기 운동의 결과로 양지 바른 곳에서는 소나무밖에 볼 수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자작자작 밟으며, 우리 일행은 제대로 보전되지 못하고 있는 숲의 다양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숲 안 까지 차량이 드나들고, 콘크리트 도로가 깔려있어 마지막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관령 산맥을 타고 넘어온 우리 일행은 유스호스텔에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따뜻한 방바닥에 둘러 앉아 백두대간의 생태적 의미와 그와 모순되는 현 실정에 대해 녹색연합 활동가 선생님의 교육을 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전까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성큼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대관령 고지의 초지인 삼양목장이 관광으로 인해 얼마나 훼손되고 있는지, 이로 인해 어떻게 백두대간의 허리가 끊겨 600만 평의 땅이 소모되고 있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꼭대기가 인간의 탐욕에 100m가량 깎인 자병산, 야생동물들의 로드킬과 실효성 없는 동물도로, 불필요하게 방치되어 있는 댐들, 그리고 정부와 시민단체간의 충돌들…… 산 하나하나에 그렇게 많은 한이 맺혀있을 줄은 몰랐다. 구수한 이야기에 깊어간 11월 14일 토요일 밤은 내가 가장 많은 생각을 안고 잔 저녁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imgcenter|0682.jpg|600|▲ 대관령목장에서 이승연 원주녹색연합 사무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0|0]
그 다음 날 우리는 일찌감치 반쯤 언 몸을 추스르며 이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삼양목장으로 향했다. 꼭대기로 점점 다가가면서 나는 그 이국적인 분위기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눈 덮인 허허벌판, 산 마루마루에서 풍차마냥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지푸라기 더미 옆에 모여 있는 양들하며 한국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녹색연합에서 오신 선생님 한 분이 합류하셔서 우리에게 이 삼양목장의 허점들을 조근조근 짚어주셨다. 삼양목장이 현재 초지법의 망을 교묘하게 피해 관광시설을 개발하려는 것 하며, 보호종인 식물들을 불법으로 전시해놓는 것 등이 생태보전의 차원에서 봤을 때 어떠한 해로움을 끼치는지 등 여러 어렵고 자칫 민감한 사안들을 쉽게 풀이해주셔서 듣는 학생 입장에서 매우 감사했다. 대관령의 매서운 바람이 우리를 쉽게 허락해주지 않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 내내 버스 안에 있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서 직접 구경할 때와 길을 걸어 내려갈 때 [imgright|0687.jpg|280|▲ 선자령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목장과 풍력발전기 |0|0]특히 바람이 더 심하게 불어서 나는 대관령이 우리를 마치 불청객을 대하듯이 내쫓으려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내가 대관령이었더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번 프로그램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이번 프로그램이 좀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프로그램의 순서와 교육적인 면에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녹색연합의 회원이 자연 파괴의 대명사인 대관령 삼양목장을 관광객으로서 둘러보았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다른 대안이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런 명목적인 것에서부터 대관령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또 새로운 자극을 얻고 돌아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다.

글 : 김채민 (녹색현장강좌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