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도전

 회원이야기/회원참여       2009. 12. 2. 14:11  l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앞으로 뭐가 되고 싶니?” 당황스런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환경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환경전문가가 될꺼야” 친구는 나의 의미있는 대답에 놀랐고, 나는 속으로 멋있는 대답이라며 으쓱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꿈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그 첫 번째 표현을 통해서 내 진로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자신감과 강제력을 부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환경전문가라는 단어의 선택에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전공으로 공부하여 과학자가 될 것인지, 녹색연합 같은 환경단체에서 환경운동가가 될 것인지, 환경기술을 바탕으로 환경엔지니어가 될 것인지. 정확히 답을 낼 수 없어서 모든 가능성을 포함하는 환경전문가라는 조금 애매모호한 단어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imgright|091202_09.jpg|340||0|0]하지만 나는 지금도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환경전문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굳이 환경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 내가 할 수 있는 일 & 내가 해야 되는 일은 환경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계속해서 변할 것이며, 그 사이에서 어느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일들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현재는 건설회사에서 환경시설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의 삶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우리가 쓰고 버리는 물, 공기, 폐기물들을 직접 공급 및 처리하는 다양한 환경시설들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더 나아가 올해는 환경엔지니어 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로서 역할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8월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녹색연합에 선뜻 인터넷으로 회원가입을 하였고, 한 달에 한번 오프라인 만남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9월, 신입회원 한마당에 참여하였다. 신입회원 한마당을 통해 녹색연합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무실 구석구석 환경을 위한 실천과 고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특히 매년 1억권이 넘게 만들어지는 교과서가 내년부터 재생종이로 출판되도록 정부의 허가를 얻어냈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12년간의 긴 노력의 결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환경운동이 사회와 정부를 향한 공허한 외침이 아닌 실제적인 성과를 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녹색연합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녹색연합이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당장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곳에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내가 일하는 건설현장 사무실부터 재생복사용지를 써보자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내가 다니는 직장의 전 현장과 본사까지 재생복사용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회사 내에서 어마어마하게 사용되는 종이를 모두 재생용지로 바꾸고, 다른 회사까지도 전파할 수 있었으면 한다.

[imgleft|091202_08.jpg|250||0|0]큰 회사에서 작은 개인의 목소리가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그 가능성을 높여 가고 있다. 첫째, 내 주변 사람부터 하나씩 설득해 나가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모으고 있다. 둘째, 회사를 설득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수치화된 자료들을 모아 효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제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셋째, 실질적인 품질검증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Pilot test를 실시하고 있다. 아직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그리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다. 직장 동료들에게 재생복사용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재생종이 사용의 취지에 대하여 부정적이진 않지만, 재생종이의 품질, 회사에 적용했을 때 생길 부작용, 회사 내부사정 등의 단점을 먼저 이야기하며 적용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럴수록 더욱 힘이 난다. 동료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켜 나가는 녹색실천의 과정이기에 한 순간 한 순간 이 과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또한 동료들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하기에 소중한 과정이다.

글 : 배석한 (녹색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