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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빨을 드러냈을 뿐이에요~!”
“아니, 나는 이빨을 드러냈을 뿐이라고요~!!”
“선생님이 빨리 OO선생님을 혼내주라고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유성이는 그 큰 눈에서 눈물을 뚝 떨어뜨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잠깐 교실을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교실한쪽에 마련된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있는 유성이는 무엇이 억울한지 나를 보며 연신 “나는 이빨을 드러냈을 뿐이에요.”라는 말을 계속한다. 유아교육기관의 교실에는 보통 생각하는 의자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교실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일종의 Time-out이다. 한동안 생각하는 의자가 텅 비어있었는데 오늘은 유성이가 그 자리에 앉아있다. ‘뭔가 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유성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유성이의 울음이 잠잠해 지길 기다렸다. 얼마 후 눈물을 겨우 그친 유성이는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고, 한참의 대화 끝에 ‘이빨을 드러냈을 뿐’인 유성이가 [생각하는 의자]에 앉게 된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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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은 다른 교사의 수업시간이었는데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아이들 몇 명이 모여서 햄스터놀이를 했다. 처음 입학하면서부터 아이들을 흥분시킨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햄스터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햄스터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햄스터 주변에는 항상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가득해 햄스터가 심심할 틈이 없다. 집에 갈 때 햄스터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 햄스터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을 때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언제부턴가 햄스터놀이를 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던 그 날도 아이들은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해 햄스터놀이를 했다. 다른 아이들은 햄스터놀이를 하면서 조용히 햄스터의 행동들을 따라했는데 유성이는 진짜 햄스터가 되어 이를 드러내고 큰 소리로 “찍찍!!” 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것이 교실에 있던 교사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 교사는 전후사정을 알 수 없었다. 이를 드러낸 채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유성이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생각하는 의자]였다.
이유도 모른 채 [생각하는 의자]에 앉은 유성이는 교사가 원망스러웠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이를 했으나 다른 게 있다면 ‘햄스터 놀이’를 한 것과 ‘햄스터 되기’를 한 것의 차이였다. 순수하게도 보이는 모습이 전부인 유성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이 있으면 몰입한 나머지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유성이. [imgright|100204_03.jpg|245| |0|0]그 모습이 참 예쁘지만 그런 성향이 가끔은 유성이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 시간은 나의 담당이 아니었기에 담당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유성이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유성이의 햄스터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햄스터사건으로 인해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는다. 그 수많은 관계 속에서 과연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가 몇이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았을까. 나의 생각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은 쉽기도 하고 상당히 어렵기도 하다. ‘내’가 살아있고 ‘나’의 목소리가 커져있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입은 닫고 귀를 열어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를 주신 이유도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많이 하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만을 하다보면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내가 속한 사회에서 힘들어하는 이유가 서로 자기의 목소리만을 크게 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기의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한번쯤 되돌아 봐도 좋을 텐데 언제부턴가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눈높이를 맞추라 한 것은 무릎을 꿇어 눈을 맞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생각을 읽어주라는 말이다. 나의 생각은 잠시 접고 상대방을 헤아리라는 말이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대신 ‘너’의 이야기를 많이 듣도록 ‘나’의 귀를 열어두어야겠다.
글 : 박지연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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